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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ristoph Desjardins      
운영자     2005-03-25 12:25    추천:83     조회:5777  
앙상블 엥테르콩탕포렌의 비올리스트 크리스토프 데자르뎅
Christoph Desjardins

-언제부터 비올라를 시작했으며, 누구에게 비올라를 배웠나?

10살때부터 비올라를 시작했지만, 이미 이전에 음악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비올라를 배우기 이전에 피아노를 배웠다. 6살 때부터 피아노를 시작했고, 10살 때에 다른 악기를 하고 싶었는데, 좀더 특별하고 나와 가깝게 느껴지는 악기를 하고 싶었다. 현악기를 하고 싶었는데, 바이올린도 첼로도 아닌 비올라가 하고 싶었다. 그러나 당시에는 비올라에 대해서 잘 알지도 못했다. 비올라를 시작한 이후에 나는 조금씩 비올라라는 악기를 발견해 나가기 시작했다. 비올라는 시간이 필요하다. 왜냐하면 우선은 악기의 크기가 문제가 되기 때문이다. 10살 때에는 오리지널 크기의 비올라를 시작할 수 없다. 14살이나 혹은 15살까지 기다려야 했다. 그리고 그 이후에도 좋은 소리를 내기 위해서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비올라는 더 많이 연주하고, 연구할 수록 더 다양한 소리를 발견하게 되는 악기이다. 파리 음악원에서는 세르쥬 콜로에게서 비올라를 배웠는데, 그는 나에게 매우 중요한 스승이다. 그는 매우 엄격했고, 비올라 소리를 크게 내는 방법을 가르쳐주었다. 특히 활을 쓰는 방법에 대해서 많은 것을 가르쳐 주었다. 말하자면 프랑스와 벨기에 악파 방식의 활쓰기를 가르쳐 주었다. 그는 음악적인 것들을 가르쳐주기 이전에 악기를 연주할 때의 섬세하고 다양한 몸의 움직임, 예를 들어 손가락과 손, 그리고 팔의 근육의 섬세한 움직임을 비롯한 몸의 움직임 등을 이해하도록 해 주었다. 세르쥬 콜로는 첫 번째로 중요한 스승이었고, 그 이후에 나는 베를린으로 가서 브뤼노 튀라나에게 배웠다. 그로부터 나는 동작의 우아함과 해석의 통일성을 유지하는 것을 배웠다.



-어떤 음악가로부터 가장 큰 영향을 받았는가?

바이올리니스트 크리스티앙 페라스의 연주로부터 많은 감명을 받았고, 피아니스트 마우리치오 폴리니를 매우 존경한다. 파리에서 그의 연주회가 있을 때면 반드시 참석한다. 그의 대가적인 기량도 훌륭하지만, 그는 연주회에서도 항상 새로운 음악적인 시도를 한다. 나는 폴리니의 그러한 점을 존경한다. 그에게 있어서 연주회는 매번 유일한 순간으로 존재하는 것 같다. 그러나 그러한 방식은 분명히 위험을 감수해야 하지만, 무엇인가 특별한 것을 만들어낸다. 그리고 내가 좋아하며, 영향을 많이 받은 작곡가로는 바흐, 베토벤, 바르톡, 그리고 베리오를 들 수 있다.

-당신은 그동안 몇 곡의 작품을 초연했는가?

모르겠다. 한번도 정확하게 세어 본 적이 없다. 그러나 비올라를 위한 독주곡이나, 비올라와 오케스트라, 혹은 실내악을 위한 협주곡은 아마 40여곡 정도가 될 것 같다. 그러나 실내악곡은 그보다 훨씬 더 많다. 특히 ‘앙상블 엥테르콩탕포렌(*Ensemble InterContemporain, 이하 본문 줄여서 EIC)’에서는 많은 수의 앙상블 작품들을 초연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마도 EIC에서 연주하면서 초연한 앙상블 작품들은 100여곡이 훨씬 넘을 것이다. 작품 초연에 있어서 나는 행운이 많은 편이다. 베리오와 불레즈, 그리고 자헬, 페델레와 같은 잘 알려진 현대 작곡가들과 직접 작업하면서 그들의 작품을 초연할 수 있는 기회를 많이 얻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는 젊은 작곡가들의 작품을 연주하는 것에도 사명감을 느낀다. 수많은 젊은 작곡가들이 그들의 작품을 세상에 알릴 수 있는 충분한 기회를 갖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는 베리오나 불레즈의 작품을 연주한다고 하면 많은 수의 청중들이 연주회를 들으러 오지만, 그렇다고 해서 젊은 작곡가들을 등한시 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언제부터 EIC에서 활동하기 시작했는가?

1990년부터 활동하기 시작했다. 물론 그 이전에도 비올리스트로서 좋은 시기를 보냈다. 브뤼셀의 모네 극장에서 비올라 수석으로 활동했는데, 당시의 활동에 지금도 만족한다. 당시 나는 모네 극장에서 중요한 오페라 작품들을 거의 다 연주해 볼 수 있었다. 몬테베르디로부터 알반 베르크의 오페라에 이르기까지 거의 대부분의 중요한 오페라는 모두 연주해 보았다. 그리고 그곳에서 부르크너의 교향곡, 스트라빈스키의 불새와 같은 대규모 관현악 작품들도 연주했었는데, 당시의 연주도 오랫동안 기억에 남는다. 물론 오케스트라의 단원들과 실내악 연주도 자주 했으며, 바르톡의 비올라 협주곡을 연주하기도 했다. EIC의 연주활동은 물론 다른 오케스트라나 앙상블과는 완전히 다르다. 우선 EIC에서는 작곡가들을 서로 다른 세 개의 시기로 나눈다. 우선 현대 음악의 선구자라고 할 수 있는 쇤베르크, 스트라빈스키, 바르톡, 드뷔시 등 20세기 초반의 작곡가들과 2차 세계대전 이후에 이전의 음악의 모습을 완전히 바꾼 메시앙, 베리오, 불레즈, 슈톡하우젠, 리게티, 마데르나 등이 있으며, 그리고 그 이후의 현대 작곡가 그룹이 있다. EIC의 성격은 독주자들로 구성된 앙상블로, 항상 독주 연주와 앙상블 연주가 공존한다. 내 생각에 EIC의 존재는 연주를 직업으로 하는 음악인들에게는 혁명적인 앙상블이다. 오늘날 독주자로서 연주자의 경력을 쌓으려는 연주자는 20개의 협주곡을 레퍼토리로 삼아 연주하는 것만으로 충분하지 않다. 그리고 독주자로서 경력을 쌓아갈 때에 실내악 연주는 중요시되지 않는 경향이 있다.그러나 EIC에서는 독주, 실내악, 그리고 새로운 작품들을 초연하는 보람을 느끼면서 연주자로서의 경력을 자유롭게 쌓아갈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EIC와 같은 앙상블 모델은 다른 곳에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다.

-당신은 이전에 몇몇 주요 오케스트라의 비올라 수석이었다. 어떠한 이유로 오케스트라를 그만두고 EIC에 입단하게 되었고, 현대음악에 대한 관심은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알고 싶다.

현대음악에 대한 관심은 필립 부스망이라는 현대 작곡가와의 만남에서 시작되었다.그는 내가 비올라 수석으로 있었던 브뤼셀의 모네 극장 오케스트라의 상주 작곡가였다. 한번은 그가 몬테베르디의 오페라 ‘포페아의 대관식’의 미완성 부분을 작곡한 일이 있었다. 이 작품의 오리지널은 분실되었기 때문에, 연주를 위해서는 유실된 부분을 작곡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당시 모네 극장의 극장장은 부스망에게 현대적인 오케스트레이션을 요구했다. 부스망은 몇몇 부분을 매우 흥미롭게 채워넣었다. 예를 들어 클라브생에 의한 통주저음이면 충분한 부분을 모든 건반악기를 다 동원해서 썼다. 클라브생은 물론이고, 피아노, 오르간, 비브라폰, 아코디언 등을 모두 다 동원했다. 그래서 작품은 많이 변화되었다. 그리고 오케스트레이션을 하면서 그는 많은 비올라 독주를 써 넣었다. 물론 부스망은 몬테베르디의 음악적인 아이디어에서 영감을 받아쓰기도 했지만, 독자적으로 쓰기도 했다. 그 일이 있은 후에 부스망은 비올라와 실내악단을 위한 작품을 작곡했다. 당시 그가 쓴 작품은 매우 어려운 작품이었기 때문에 많은 연습을 필요로 했다. 특히 특별한 활의 기교를 사용했는데, 계속해서 활을 튀기는 기교를 사용했다. 한번 활을 튀김으로써 얼마나 많은 음표를 연주할 수 있는지 함께 시도해 보기도 했다. 작품 이름도 ‘서핑’이었다. 파도 에너지를 이용해서 서핑을 하는 것처럼, 활을 쓰는 방법을 시도한 작품이었다. 이 작품을 초연하면서 나는 활을 사용하는 방법을 포함해서, 다른 방식으로 음악을 표현하는 것을 배우게 되었고, 계속해서 새로운 것을 찾기 위해 노력했다. 이미 잘 알려진 작품이 아니라, 아직 알려지지 않은 작품을 성공적으로 연주했던 당시의 일은 나의 관심을 새로운 영역으로 향하게 했고, 콩쿨을 거쳐서 EIC에 들어가게 되었다.

-이번에 시테 드 라 뮈지크에서 열린 바흐/베리오 페스티벌 기간 동안에 연주한 베리오의 작품들에 대한 얘기를 듣고 싶다. 그리고 바흐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 1번도 이번 페스티벌의 프로그램에 들어 있었는데…

우선 비올라 독주를 위한 ‘시쿠엔차’는 분명 매우 뛰어난 작품으로, 1967년에 작곡되었다. 13분 정도의 곡으로, 놀라운 완성도를 지니고 있다. 그리고 1967년 당시에 이러한 곡이 작곡되었다는 것은 분명히 혁명적인 일이다. 이 작품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그러한 평가를 받고 있다. 나는 이 작품의 지속성을 매우 좋아하는데, 동시에 이 곡은 다양한 접근이 가능하다. 이 작품에 담겨져 있는 강렬한 에너지는 우선적으로 청중들에게 새로운 충격을 주지만, 작품안에 담겨져 있는 화성적인 진행과 그 사이에 있는 숨겨져 있는 선율의 진행은 정말로 훌륭하다. 그리고 비올라와 오케스트라를 위한 작품인 ‘보치(Voci)’는 시쿠엔차보다는 최근의 작품으로 1985년에 작곡되었다. 베리오는 시칠리아의 선율 가운데 평소에 좋아하던 것을 사용해서 이 작품을 작곡했다. 당시 어부들이나 상인들이 즐겨 부르던 노래를 바탕으로 했지만, 내 생각에 이 작품은 순수한 음악적인 힘을 지니고 있다.그리고 내가 연주했던 연주회가 이번 페스티벌의 마지막 연주회였었고, 베리오의 작품들 사이에 바흐의 작품을 연주하기로 되어 있었다. 나는 작품 뿐만 아니라 악기도 서로 다른 악기를 사용했다. 바흐를 연주할 때에 사용한 비올라는 테너 비올라인데, 이 악기는 일반적인 비올라보다는 훨씬 크다. 잘 알겠지만, 비올라는 바이올린이나 첼로처럼 일정하게 정해진 크기가 없다. 그러나 낮은 저음에서 충분히 울리고 아름다운 소리를 얻기 위해서는 악기가 충분히 길어야만 한다. 그러나 그렇게 되면 또 연주에 어려움이 생기는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18세기에는 이러한 문제점을 해결하는 이상적인 비올라로서 테너 비올라가 존재했다. 바흐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을 비올라로 연주할 때에 발생하는 첫 번째 어려움은 풍부하게 지속되는 저음을 얻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첼로로 연주될 때에는 저음의 지속으로 인해서 화성적인 토대를 얻을 수가 있었지만, 비올라로 연주될 때에는 분명히 이런 측면이 약해진다. 그러나 테너 비올라는 그런 단점을 보완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바흐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을 테너 비올라로 계속 연주할 예정이다.

-베리오와 함께 작업을 한 적이 있는가?

그렇다. 나는 20년 전부터 그를 알고 있다. 그를 처음으로 만났을 때는 나는 그의 비올라를 위한 시쿠엔차를 잘 연주하지 못했었다. 그러나 베리오는 긍정적이었고, 많은 조언을 해 주었다. 무엇보다도 곡을 연주하는 동안 에너지를 잘 사용하는 방법을 조언해 주었다. 처음에 너무 에너지를 많이 들이면 끝까지 잘 연주할 수 없고, 또한 긴장해서도 안된다. 왜냐하면 조금이라도 긴장하면 20초가 넘게 계속되는 트레몰로를 제대로 연주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나서 그와의 중요한 만남은 그가 나와 다른 클라리넷티스트를 위해서 작곡한 비올라와 클라리넷을 위한 협주곡을 작곡했을 때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베리오를 만난 것은 그가 세상을 떠나기 얼마전이었다. 그는 나와 다른 음악가들을 위해서 ‘나튜라’라는 제목의 곡을 작곡했다. ‘자연의’라는 뜻의 이 작품은 시칠리아의 대중적인 선율을 바탕으로 해서 작곡한 것인데, 고전음악과 대중음악의 경계를 잊고, 어떤 연주회장인가 하는 부차적인 것들을 잊고 우리가 지금 여기서 자연스럽게 음악을 연주하고 있다는 사실에 의미를 담은 작품이다. 당시의 베리오와의 마지막 만남은 나에게 커다란 추억으로 남아있다.

-바이올린이나 첼로, 혹은 다른 악기를 위해 쓰여진 작품을 비올라로 편곡해서 연주하는 것에 대해서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다소 일반적인 얘기로 시작하겠다. 분명히 19세기 초반까지도 비올라를 위한 작품은 거의 없었고, 이것은 나에게 커다란 의문이었다. 물론 아직은 불완전하겠지만, 나는 나 나름대의 의문에 대한 답을 얻었다. 분명히 비올라는 낭만주의 시대의 감정을 표현할 수 있는 좋은 악기였음에도 불구하고, 이 시대에 우리에게 남겨진 작품들은 베를리오즈의 ‘이탈리의 해럴드’나 슈만의 ‘이야기 그림책’, 혹은 브람스의 비올라를 위한 소나타 이외에는 거의 없었다. 내 생각에 비올라를 위해서 많은 작품을 작곡하지 않았던 가장 큰 이유는 당시 뛰어난 비올리스트나 비올라 악파가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파리 음악원에서 비올라 클래스가 시작된 것은 1898년 경으로, 거의 19세기의 끝 무렵이다. 당시에는 많은 수의 바이올리니스트들이 필요에 의해서, 비올라를 연주하는 경우가 많았고, 비올리스트로서만 활동하는 수는 매우 적었다. 그러한 이유 가운데 또 하나는 순수하게 비올라를 위한 작품의 수가 많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하다. 20세기에 들어서 힌데미트나 윌리엄 프림로즈와 같은 비올리스트들이 활동을 시작했고, 이들이 비올라라는 악기에 중요한 의미를 부여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1950년 경부터 비올리스트들은 훌륭한 비올라 레퍼토리를 얻을 수 있었다. 예를 들어 침머만, 리게티, 베리오, 마데르나와 같은 작곡가들이 비올라를 위해서 중요한 작품들을 쓰기 시작했다. 그리고 우리와 좀더 가까운 이반 페델레, 미카엘리 자헬, 마뉘엘 누네스 등이 있다. 나는 편곡 작품에 관심이 많지만, 우선 작곡가의 의도를 무시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불레즈의 ‘메사쥬 에스키스’는 본래는 일곱 대의 바이올린을 위한 작품인데, 불레즈는 일곱 대의 비올라를 위해서 편곡하기도 했다. 그리고 개인적으로는 바로크 레퍼토리에도 관심이 많은데, 얼마 전부터 바로크 레퍼토리를 비올라와 아코디언으로 편곡해서 연주하고 있다. 예를 들어 바흐의 바이올린과 클라브생을 위한 소나타를 비올라와 아코디언으로 편곡해서 연주했는데, 비올라는 현악기이고, 아코디언은 건반악기이지만, 관악기에 더 가까운 악기이기 때문에 서로 매우 잘 어울린다고 생각된다.

-현대 작곡가들이 비올라를 위해서 많은 작품을 작곡한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이 점에 대해서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왜냐하면 비올라는 다른 악기와는 완전히 차별화되는 특별한 음색을 지닌 악기이기 때문이다. 비올라는 정말로 다양한 연주의 가능성이 있으며, 오늘날에는 작곡가들에게 작곡의 영감을 주는 훌륭한 비올리스트들이 많이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당신이 좋아하는 비올라 레퍼토리는 무엇인가?

나는 다양한 시대의 레퍼토리를 함께 연주하는 것을 좋아한다. 예를 들어 이번 바흐/베리오 페스티벌에서 처럼 베리오의 시쿠엔차로 시작한 다음에 바흐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을 연주하는 방식을 좋아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나는 청중들에게 현대음악 레퍼토리들을 발견하도록 하는 것을 좋아한다.

-당신은 가르치는가?

나는 음악원에서 정기적으로 학생들을 가르치지는 않지만, 매우 짧은 기간 동안에 어떠한 계획을 갖고 학생들과 함께 작업하는 방식을 좋아한다. 예를 들어 나는 비올라 학생들과 비올라 앙상블을 만들어서 다양한 레퍼토리들을 집중적으로 공부하고, 함께 연주하곤 한다. 그리고 나는 다른 악기를 연주하는 학생들과 실내악 팀을 만들어서 공부하고 연주하는 방식도 좋아한다. 아무튼 학생들과 궁극적으로는 연주를 목적으로 공부를 하는 방식은 짧은 기간, 예를 들어 일주일 만에도 매우 밀도 높은 공부를 할 수 있다. 내 생각에 작품을 공부하는 것은 연구와 연습이 필요하지만, 동시에 연주회를 통한 감정적인 경험을 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러한 방식은 학생들에게 좋은 추억을 남길 수 있다.

-당신은 음악과 비올라를 떠나서 무엇을 하는가?

나는 다양한 공연을 보는 것을 매우 좋아한다. 다른 형태의 공연을 통해서 내가 기획하고자 하는 공연의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내가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는 영역은 문학이다. 나는 몇몇 작가들과 친분을 맺고 있는데, 특히 그 가운데는 리샤르 미이에가 있다. 그는 클래식 음악, 특히 현대 음악에 대해서 매우 잘 알고 있으며, 또한 누구보다도 잘 설명한다. 그래서 나는 그와 우정을 쌓을 수 있었고, 또 그와 함께 강연이 있는 연주회도 기획해서 하기도 했다. 그는 ‘비올라의 길’이라는 제목의 소설을 쓰기도 했는데, 이 소설은 한 비올리스트의 삶을 다룬 것이기도 하다.

김동준 / 음악평론가
파리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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