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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becca Clarke    (전문연주자)      
운영자     2002-10-20 (일) 21:12    추천:190     조회:15700     211.xxx.88
ㆍ첨부#1 rebecca.jpg (12KB) (Down:153)

Rebecca Clarke 비올라를 통해 자신의 삶을 찾은 한 여성의 얘기

어려운 역경을 이겨낸 위대한 예술가나 음악가들은 한 두 명이 아닐 것이다. 그 어려움은 경제적인 어려움 보다는 육체적이나 정신적인 것이 더 많다. "인생의 십자가들이 음악의 십자가(#)와도 같구나"라는 Ludwigvan Beethoven의 말처럼....
그런 어려움과의 투쟁 속에서 탄생한 음악 작품들이 오늘날 우리에게 삶의 기쁨과 활력소가 되고 있는 것은 커다란 아이로니가 아닐까?

20세기 초반까지만 해도 남성 우월적인 사회였기 때문에 여성이라는 이유가 여성 음악가에게는 커다란 십자가였다. 그런 고비와 편견을 극복하고 동료 음악가들에게 인정을 받은 violist이자 작곡가인 Rebecca Clarke(1886~1979)는 우리가 재 조명을 해야 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영국 Harrow에서 독일계 어머니와 미국계 아버지의 사이에 4형제중 장녀로 태어난 Beccle(가정에서 부르던 애칭)은 행복한 가정 속에서의 어린 시절을 경험하지 못하고 엄격한 아버지에게 여러 가지 상처와 억압을 받았다. 그녀에게 있어 유일한 기쁨이자 희망은 음악이었다.

그녀가 음악을 시작하게 된 동기는 그녀의 아버지가 즐기기 위한 '가정실내 악단'을 만들고자 자녀들에게 음악을 가르친 것이었다. Rebecca는 violin과 음악이론을 거의 스스로가 익혔다. 특히 어렸을 땐 Bach, Brahms, Schuman, Schubert, Berlioz등의 음악을 선호하며 이 들의 곡을 개인적으로 공부했다.

1902년에 그녀는 Royal Academy(영국 왕립 음악원)에 입학을 해서 Hans Wessely 에게 violin을 배웠다. 또 Lionel Tertis에게 비올라를 처음 권해줬던 Percy Miles 교수에게 화성법을 배웠으나 그에게 자신의 딸이 프로포즈를 받았다는 사실을 알게 된 그녀의 아버지가 학업을 중단시키고 귀가하게 하였다.

이제 다시 집이란 울타리에 갖힌 Rebecca는 자신의 감정과 사고를 스스로 곡으로 표현할 수 있었고 그의 독특한 음악세계에 피난처와 자유의 공간을 마련하게 되었다. 그녀의 아버지가 의심을 하면서도 딸이 작곡한 몇 가지 가곡을 왕립음대 교수였던 Charles Stanford에게 보냈는데 그녀의 재능을 인정한 그가 첫 번째 여성 제자로 받아드렸다. 이것이 Rebecca Clarke가 처음으로 비올라와 만나게 된 계기가 되었다. 1907~1910 동안 학업을 하는 동안 Stanford 교수는 그녀에게 이 중간음의 현악기를 권하며 "작곡가가 되려는 이에게 다른 악기보다 비올라가 도움이 되는 것은 비올라가 교향악단과 그 화성의 한 가운데에 위치하게 되는 악기이기 때문이다."라며 그녀를 설득했다.

이 때부터 비교적 독립을 하게 된 Rebecca가 40파운드에 산 Grancino 비올라를 갖고서 그 악기 하나로 평생을 악단 단원으로, 독주자로의 연주에 사용하였다. 1912년부터  1914년까지 명 지휘자인 Henry Wood가 새롭게 창립한 Queen's Hall Orchestra의 6명밖에 안되는 여성단원의 한 명으로서 활동을 했다. 그리고 런던에서 몇 군데의 실내악단에서 연주를 했으며 Stanford 교수의 소개로 그 시대에 유일한 여성 현악단, Norah Clench 현악 4중주단에서 연주 활동을 했다. 또한 실내악단에서 활동을 하며 Thibaud, Heifetz, Casals, Szigeti, Rubenstein, Schnabel등의 음악가들과 비올라를 하는 지휘자들인 Pierre Monteux와 Eugene Goosens등과 교분을 쌓으며 음악적 역량을 키워갔다.

1916년에 처음으로 미국을 방문하여 30년 동안이나 계속될 recital 독주자로서의 활동을 시작하게 되었고, 평생 친구로 지낸 첼리스트 May Mukle과 다른 두 명과 함께 1920~1939년 까지 연주 활동을 하며 English Ensemble을 창단 하였다.

1919년에 미국에서 음악계의 후원자 Elizabeth Sprague CooLidge 여사의 지도 아래 해마다 개최되는 작곡 콩쿨(Berkshire Chamber Music Festival Competition)에서 익명으로 제출된 Rebecca의 작품인 비올라와 피아노를 위한 Sonata로 2등을 했다. 1등도 가능했었다. 6명의 심사원들의 점수가 발표되자 Rebecca의 곡과 Ernst bloch의 작품인 Suit for viola and piano가 동점이었다. 그래서 Coolidge 여사가 명 비올라 곡인 Bloch의 곡의 손을 들어줬다. 나중에 2등을 한 무명 작곡가의 이름을 공개해 Rebecca의 작품임을 알고 모두다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아울러 1925년 런던의 Wigmore Hall에서 Rebecca의 곡만을 연주했을 때 청중과 평론가는 높은 점수를 주었고, 그녀의 음악은 Debussy, Ravel, Blooch 그리고 영국 민속음악(folksong)의 깊은 영향을 받았다고 평가하였다.

1929년 이후 작곡가로서의 창조력도 점차 줄어들었고 왼손 마비(arthritis)의 문제로 인해 1940년대부터 연주자로서의 활동도 줄어들며 대신 미국 뉴욕의 라디오 방송국에서 고전 음악 강좌 활동을 시작하게 되었다.

그 때쯤 생활에도 안정을 찾게 되었다. 1944년 예전에 영국에서 알게 된 피아니스트 James Friskin(당시 뉴욕 음악원 교수)과 결혼을 해서 1979년 세상을 떠날 때 까지 뉴욕의 Manhattan 아파트에서 머물렀다. 이런 평안한 가정환경에서 행복하게 살았으며 어렵던 어린 시절과 청년기의 갈등을 벗어날 수 있게 되었다.

Rebecca는 자신의 홍보활동을 못하였고 1950년 이후부터 그녀의 작품에 대한 관심도 사라지고 말았다. 그러나 1970년대 미국의 여성운동과 더불어 음악계에서도 그녀의 작품들을 부활시켜 1976년에 Rebecca Clarke의 90세 생일에 뉴욕의 클래식 음악 방송국이 특집 방송을 하였으며 본인과의 인터뷰를 통하여 그녀의 음악적 유산을 다시 발견하게 되었다. 이어 음악학과 음악사 학자들이 그녀에 대한 관심을 다시 갖게 되어 그녀의 작품중 특히 비올라 소나타와 피아노 3중주를 새로이 출판하였다.

그 후 얼마 뒤 1979년 93세에 20세기의 위대한 여성 음악가 Rebecca Clarke는 음악적 인정과 단란한 행복을 느끼며 뉴욕에서 세상을 떠났다.  (자료제공 : OMOBON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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