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lliam Primrose


2001-01-30 04: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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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다음은 프림로스의 전기인 "Walk on the North Side"(미국 Bringham Young
University 출판국저)에서 최대한 간단히 발췌해서 옮긴것 입니다.
Lionel Tertis,Paul Hindemith와 더불어 3대 비올리스트로 추앙 받는 프림로스는
1904년 스코틀랜드의 글래스고우에서 유태계 영국인으로 태어 났습니다.
바이얼리스트인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바이얼린을 시작한 그는 요하임과 세브직의
제자인 카밀로 리터에게 사사를 받으며 본격적인 음악공부를 시작했다고 합니다.
영국의 명문 음악원인 길드.홀에 장학생으로 명교사 막스.모렐의 문하에 들어가며
런던으로 옮긴 프림로스는 이때 테크닉적으로 비약적인 발전을 이룩했으나 정작
본인은 길드.홀 시절을 "별로 유쾌한 시절은 아니었다"라고 했다고 합니다.
1923년 런던음악계에 바이얼리니스트로서 랄로의 "스페인 교향곡"과 엘가의
"바이얼린 협주곡"으로 데뷔한 프림로스는 직업연주가로 나서기보다 좀더 음악적
트레이닝을 쌓고자 벨기에로 건너가 유명한 유진.이자이의 제자로서 가르침을
받게 됩니다.
이 기간동안 프림로스는 이자이의 권유로 비올라로 전향을 결심합니다.
1930년 런던4중주단의 비올리스트로서 활동을 시작한 프림로스는 다시 1937년
토스카니니의 NBC교향악단의 창설 멤버로 부수석으로 활동 합니다.
이때부터 비올리스트로서 프림로스는 전성기를 맞이하게되고 결국 NBC측의
후원하에 저 유명한 프림로스4중주단(1st Vn 오스카.셤스키,2nd Vn요셉.긴골드,
Vc 하비.샤피로)을 창단하게 됩니다.
그러나 대단한 명성의 연주자들로 구성된 이 4중주단은 의외로 명성에 어울리는
활약도 못하고 녹음 활동도 부진하다가 결국 해체되고 맙니다.
1941년 토스카니니의 사임과 비슷한 시기에 NBC교향악단을 그만둔 프림로스는
솔로이스트로 나서 더욱 확고한 명성을 얻게되고 이때 월튼,바르톡등의
작곡가들로부터 유명한 그들의 비올라 협주곡을 헌정 받아 초연합니다.
(유감스럽게도 바르톡 협주곡의 경우 작곡자가 초고만을 완성하고 사망했기에
그 제자인 티보.셀리의 정리판으로 초연)
특히 이무렵 쿠세비스키와 녹음한 베를리오즈의 "이탈리아 해롤드"는 비올라
레코딩사를 떠나 전체 레코드사에서도 불후의 명작으로 유명 합니다.
솔로이스트로의 입지가 확고해지자 프림로스는 실내악으로 관심을 돌려 하이페츠,
피아티골스키등 불멸의 연주자들과 주옥같은 실내악 레파토리를 녹음하기도
했습니다.
특히 하이페츠와는 서로의 기교를 뽐내듯 엄청난 빠르기로 연주한 모짜르트의 "협주
교향곡"의 경우 제 생각엔 이 녹음에 필적한 템포의 녹음은 앞으로 출연하기
힘들지않을까 싶을 정도의 대단한 연주로 유명 합니다.
연주자로서의 명성에 못지않게 교육자로도 명망을 떨친 프림로스는 인디애나,USC,
이스트만음대등에서 제자를 양성했는데 그 제자들이 현재 최고의 교사들로서
현재 미국 비올라계를 주도하고 있습니다.
한편 우리에겐 부럽고도 더 솔직하자면 배가 아프게도 프림로스는 일본인 아내를
맞아서인지 일본에 대한 사랑이 지극 했으며 한때 동경대와 도호 음악원에서
상당수의 일본인 제자들을 키워내기도 했습니다.
또 후학들을 위해 비올라 레파토리의 확장과 보급에도 힘써서 자신이 직접 편곡한
많은 악보들이 오늘날 출판되고 있기도 합니다.
출판된 악보들외에 절판된 그의 "Scale",메뉴인과 공저인 "Violin and Viola"
(공저라고는 하나 바이얼린에 역점을 두고 서술하여 비올라쪽 파트는 취약함),
"Playing the Viola,Conversations with William Primrose"(제자인 데이빗.달튼
교수와 인터뷰 형식으로 집필한 서적)등의 저서를 남겼습니다.
악기운도 좋았던 프림로스는 1600년산 아마티,스트라드 "맥도날드",과르네리
"ex 프림로스"등을 사용하여 무수한 레코딩을 남겼는데 주로 SP시대와 LP시대에
발매된 프림로스의 레코딩은 현재 영국의 Biddulph와 Doremi레코드사에의해
재 조명,CD로 복각 발매되고 있습니다.
이렇게 다양한 활동을 펼치더 프림로스는 1977년 암 선고를 받고 마지막으로
제직했던 미국 유타주의 Bringham Young Univ.가 위치한 프로보에서 1982년
사망했습니다.
프림로스의 마지막 안식처였던 프로보엔 현재 미국 비올라 협회와 대학측의
후원으로 설립된 "프림로스 박물관"이 건립되어 위대한 Viola Legend를 기리고
있습니다.
University 출판국저)에서 최대한 간단히 발췌해서 옮긴것 입니다.
Lionel Tertis,Paul Hindemith와 더불어 3대 비올리스트로 추앙 받는 프림로스는
1904년 스코틀랜드의 글래스고우에서 유태계 영국인으로 태어 났습니다.
바이얼리스트인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바이얼린을 시작한 그는 요하임과 세브직의
제자인 카밀로 리터에게 사사를 받으며 본격적인 음악공부를 시작했다고 합니다.
영국의 명문 음악원인 길드.홀에 장학생으로 명교사 막스.모렐의 문하에 들어가며
런던으로 옮긴 프림로스는 이때 테크닉적으로 비약적인 발전을 이룩했으나 정작
본인은 길드.홀 시절을 "별로 유쾌한 시절은 아니었다"라고 했다고 합니다.
1923년 런던음악계에 바이얼리니스트로서 랄로의 "스페인 교향곡"과 엘가의
"바이얼린 협주곡"으로 데뷔한 프림로스는 직업연주가로 나서기보다 좀더 음악적
트레이닝을 쌓고자 벨기에로 건너가 유명한 유진.이자이의 제자로서 가르침을
받게 됩니다.
이 기간동안 프림로스는 이자이의 권유로 비올라로 전향을 결심합니다.
1930년 런던4중주단의 비올리스트로서 활동을 시작한 프림로스는 다시 1937년
토스카니니의 NBC교향악단의 창설 멤버로 부수석으로 활동 합니다.
이때부터 비올리스트로서 프림로스는 전성기를 맞이하게되고 결국 NBC측의
후원하에 저 유명한 프림로스4중주단(1st Vn 오스카.셤스키,2nd Vn요셉.긴골드,
Vc 하비.샤피로)을 창단하게 됩니다.
그러나 대단한 명성의 연주자들로 구성된 이 4중주단은 의외로 명성에 어울리는
활약도 못하고 녹음 활동도 부진하다가 결국 해체되고 맙니다.
1941년 토스카니니의 사임과 비슷한 시기에 NBC교향악단을 그만둔 프림로스는
솔로이스트로 나서 더욱 확고한 명성을 얻게되고 이때 월튼,바르톡등의
작곡가들로부터 유명한 그들의 비올라 협주곡을 헌정 받아 초연합니다.
(유감스럽게도 바르톡 협주곡의 경우 작곡자가 초고만을 완성하고 사망했기에
그 제자인 티보.셀리의 정리판으로 초연)
특히 이무렵 쿠세비스키와 녹음한 베를리오즈의 "이탈리아 해롤드"는 비올라
레코딩사를 떠나 전체 레코드사에서도 불후의 명작으로 유명 합니다.
솔로이스트로의 입지가 확고해지자 프림로스는 실내악으로 관심을 돌려 하이페츠,
피아티골스키등 불멸의 연주자들과 주옥같은 실내악 레파토리를 녹음하기도
했습니다.
특히 하이페츠와는 서로의 기교를 뽐내듯 엄청난 빠르기로 연주한 모짜르트의 "협주
교향곡"의 경우 제 생각엔 이 녹음에 필적한 템포의 녹음은 앞으로 출연하기
힘들지않을까 싶을 정도의 대단한 연주로 유명 합니다.
연주자로서의 명성에 못지않게 교육자로도 명망을 떨친 프림로스는 인디애나,USC,
이스트만음대등에서 제자를 양성했는데 그 제자들이 현재 최고의 교사들로서
현재 미국 비올라계를 주도하고 있습니다.
한편 우리에겐 부럽고도 더 솔직하자면 배가 아프게도 프림로스는 일본인 아내를
맞아서인지 일본에 대한 사랑이 지극 했으며 한때 동경대와 도호 음악원에서
상당수의 일본인 제자들을 키워내기도 했습니다.
또 후학들을 위해 비올라 레파토리의 확장과 보급에도 힘써서 자신이 직접 편곡한
많은 악보들이 오늘날 출판되고 있기도 합니다.
출판된 악보들외에 절판된 그의 "Scale",메뉴인과 공저인 "Violin and Viola"
(공저라고는 하나 바이얼린에 역점을 두고 서술하여 비올라쪽 파트는 취약함),
"Playing the Viola,Conversations with William Primrose"(제자인 데이빗.달튼
교수와 인터뷰 형식으로 집필한 서적)등의 저서를 남겼습니다.
악기운도 좋았던 프림로스는 1600년산 아마티,스트라드 "맥도날드",과르네리
"ex 프림로스"등을 사용하여 무수한 레코딩을 남겼는데 주로 SP시대와 LP시대에
발매된 프림로스의 레코딩은 현재 영국의 Biddulph와 Doremi레코드사에의해
재 조명,CD로 복각 발매되고 있습니다.
이렇게 다양한 활동을 펼치더 프림로스는 1977년 암 선고를 받고 마지막으로
제직했던 미국 유타주의 Bringham Young Univ.가 위치한 프로보에서 1982년
사망했습니다.
프림로스의 마지막 안식처였던 프로보엔 현재 미국 비올라 협회와 대학측의
후원으로 설립된 "프림로스 박물관"이 건립되어 위대한 Viola Legend를 기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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