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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주회 초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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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리우스 미요의 비올라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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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10-18 17:22 6,800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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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네스 마틴슨이 다리우스의 미요의 부인인 마들린느 미요를 만나 나눈 인터뷰를 소개합니다. 국내에서도 미요의 '비올라와 피아노를 위한 네 개의 얼굴(Quatre Visages)'은 더욱 자주 연주되고 있는데, 그 이외의 다른 미요의 실내악 작품에 대해서도 접할 수 있는 기회가 되길 바랍니다.

1998년 1월 8일에 나는 마들린드 미요를 파리에 있는 그녀의 아파트에서 만났다. 우리는 세상을 떠난 그의 남편, 다리우스 미요의 비올라 작품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우리는 1944년에 제르멩 프레보스트에게 헌정된 3개의 비올라와 피아노를 위한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했다. 프레보스트는 세계에서 가장 역사가 깊은 현악 사중주단인 프로 아르트 현악 사중주단(1919년 창단)을 창설한 비올리스트로서 현재는 매디슨에 거주하고 있다. 비올라와 피아노를 위한 3개의 작품들은 모두 1944년에 매디슨에서 초연되었다. 매디슨은 내가 자란 곳이고, 그리고 비올라를 처음 배운 곳이기도 해서 나에게는 매우 각별한 곳이다.

마들린느 미요와의 대화 가운데 일부를 여러분에게 전한다. 대화 내용 중에 비올라와 피아노를 위한 3개의 피아노 작품에 대해서도 얘기하고 있다.

마틴슨:미요와 프레보스트는 어떻게 해서 만나게 되었지요?

마들린느:1919년인가 1920년이었을 거에요. 남편은 매우 훌륭한 음악가들과 음악학자인 폴 콜라에에 의해 운영되던 브뤼셀의 연주회에 초대를 받았지요. 콜라에는 화학과 교수이기도 했는데, 나중에 벨기에 라디오의 감독이 되었지요. 몇 년의 시간 동안에 남편은 그와 매우 친해졌어요. 그즈음 남편은 매우 자주 브뤼셀에 가곤 했지요. 거기서 남편은 다른 몇몇의 연주자들을 만났고, 후에 프로 아르테 사중주단을 결성할 연주자들도 만났습니다. 그 당시에 그들은 매우 가난했고, 돈을 벌 수 있는 일이라면 무엇이든지 했답니다. 닥치는대로 카페나 극장 등에서 연주를 했지요. 그러나 그들은 점차로 알려지기 시작했어요. 그들은 뛰어난 연주력을 지닌 사중주단이었지요. 고전적인 작품 뿐만 아니라, 현대 음악도 연주했답니다. 그리고 그건 정말 확실한 사실이에요. 미요는 그들과 매우 사이가 좋았지요, 그리고 미요는 파리에서의 첫번째 연주를 주선했어요. 그리고 내 생각에 그들은 그 사실에 대해 매우 감사했어요. 그리고나서 그들은 미국으로 건너갔는데, 역시 그들은 자신들이 미국에서 지내는 첫해 1년 동안 자신을 후원한 쿨리지 부인에게 감사했지요. 그들 네 명의 연주자들은 살아있는 한 많게든 적게든 쿨리지 부인에게 감사해야 할 거에요.

마틴슨:그리고 로랑과 제르멩을 위한 바이올린과 비올라를 위한 소나티네에 대해서 들려주세요,

마들린느:이 작품들은 모두가 제르멩을 기쁘게 하기 위해서 쓰여진 거지요. 제르멩은 친구에게는 정말로 진실했던 그런 사람이었어요.

마틴슨:미요가 제르멩 뿐만 아니라 알퐁스 오누도 알고 있었나요? 그렇지 않으면 그 둘 모두와 친구사이였나요?

마들린느:아니요, 저와 미요는 제르멩과 더 친한 사이였다고 생각해요. 왜냐하면 제르멩은 사중주단을 떠난 뒤에도 캘리포니아에 오래 살았기 때문이죠. 다른 사람들과는 그저 친구사이였고요. 아시다시피 사중주단은 같은 장소에 하루 이상 머물지 않거든요. 1928년에 함께 갔던 일을 생각해 볼께요, 우리는 그곳, 바로 뉴욕에서 그들을 만났죠. 당시에 그들은 갈아입을 옷이 없었고, 또 그 옷들을 빨 수도 없는 형편이었죠. 더러워진 옷들은 이전의 연주여행지였던 벨기에에 모두 두고 온 것이었어요. 그리고 그들은 몇개의 단추들을 잃어버리기까지 했죠. 그리고 제가 여자였기 때문에, 그들은 자신들의 셔츠와 양복을 제게 가져와서 수선을 부탁했어요. 정말 그때 일은 좀 끔찍했었답니다.

마틴슨:비올라와 피아노를 위한 3개의 작품, 그러니까 비올라 소나타 1번, 소나타 2번, 그리고 '네 개의 얼굴'은 제르멩 프레보스트가 미요에게 어떤 제안을 하거나 영향을 끼친 것인가요, 아니면 전적으로 미요의 아이디어에 바탕을 둔 것인가요?

마들린느:그것들은 전적으로 미요의 아이디어였어요. 미요는 어린시절부터 충분한 공부를 한 바이올리니스트이자, 비올리스트였거든요. 제 생각에 그는 다른 어떤 사람들보다도 비올라에 대해 충분히 알고 있었어요. 만일 하모니카를 위한 협주곡을 작곡했을 때에는 그는 아마 다른 사람에게 조언을 구했을 거에요. 자신이 확신할 수 없는 부분에 대해서는 당연히 그래야만 했겠죠. 그러나 바이올린, 첼로, 비올라에 대해서 미요는 충분히 알고 있었다고 생각해요. 아마 미요가 11살이나 12살 무렵이었을 거에요. 그의 선생님은 미요를 현악 사중주단의 제 2바이올린을 연주하게 했었지요. 미요는 대부분의 고전적인 사중주 레퍼토리들을 연주해 보았고, 또한 드뷔시의 현악 사중주도 알게 되었지요. 그에게 드뷔시의 현악 사중주는 어떤 계시와도 같았어요. 그래서 저는 드뷔시의 작품이 그에게 커다란 영향을 주었을 거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미요가 남달리 실내악 작품을 많이 쓴 원인도 된 것 같아요.

마틴슨:부인은 매디슨에서 미요의 비올라 작품이 초연될 때에 참석한 적이 있나요?

마들린느:그럼요, 나는 미요와 50년 동안 함께 살았고, 내가 본 것과 들은 것에 대해서는 하나님이 아실 거에요, 물론 그 전부를 당신에게 말씀 드릴 수는 없지만요. 제가 말씀 드릴 수 있는 것은 제가 상당히 놀랐다는 점입니다. 미요가 현악 사중주 14번과 15번, 이 두 개의 현악 사중주는 8중주로도 연주될 수 있지요, 을 작곡했을 때 그는 작곡을 위한 작은 노트를 가지고 있었는데, 거기에는 어떤 수정도 없었지요. 그리고 그렇게 작곡 노트의 끝까지 채웠답니다. 그래서 저는 상당히 놀랐답니다. 그리고 그 작품들은 사중주의 형태로 연주하든, 8중주의 형태로 연주하든지 어려운 작품이었습니다. 당시 미요의 친구들이나, 그와 같은 세대의 작곡가들은 실내악 작곡에 그렇게 열정을 기울이지는 않았답니다. 한번은 장 콕토가 출판하던 신문에 미요는 글을 쓴 적이 있었습니다.

'나는 18개의 현악 사중주를 작곡할 예정입니다.'라고요. 물론 다른 사람들은 '와우, 베토벤 보다 1개나 더 작곡할 작정이란 말이지요?'라고 말했겠지요. 그러나 미요의 의도는 그런게 아니었어요. 그는 실내악의 중요성의 대해서 말하고 싶었던 것이지요. 한편으로 현악 사중주들을 헌정할 때에는 특정한 사람이나, 친구들에 대한 존경심을 바탕에 두었습니다. 첫번째 현악 사중주는 폴 세잔느를 추억하면서 헌정되었고, 마지막은 그의 부모를 위해 바쳐졌습니다. 그리고 당신도 아시다시피 현악 사중주 13번은 나에게 헌정되었습니다. 왜냐하면 13이란 수는 언제나 우리에게 행운을 가져다 준 숫자였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결혼 25주년 기념에 바쳐진 현악 사중주가 하나 있고, 포레에게 헌정된 현악 사중주가 또 하나 있습니다.

마틴슨:비올라 소나타 1번에 대해 얘기를 나누어보죠. 당신은 미요가 작곡가를 알 수 없는 선율을 어디서 얻었는지 알고 있나요?

마들린느:저 역시 그 선율의 작곡가가 누군인지 모른답니다. 아마도 미요는 엑스 프로방스에 있는 메잔느 도서관에서 그 선율을 찾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선율들은 작자 미상입니다. 아마도 말이지요. 그러나 저는 소나타 2번을 더 좋아한답니다.

마틴슨:저는 두 곡을 다 좋아합니다. 제 생각에 대부분의 비올리스트들은 소나타 1번을 더 좋아하는 것 같습니다. 2번을 더 좋아하는 경우는 드물지요.

마들린느:그래요, 맞아요. 그러나 미요는 2번을 더 좋아했지요.

마틴슨:소나타 1번은 '미요다운' 작품입니다. 그러나 나는 미요가 1번 소나타에서 처럼 다른 데서 자주 선율을 빌려오곤 했는지 궁금합니다.

마들린느:미요는 민요의 선율이나, 오래된 곡에서 선율을 빌려오는 것을 반대하지 않았어요. 만일 작곡가가 자신의 자유와 개성을 잃지 않는다면 말이지요. 스트라빈스키와 같은 작곡가와 그 이외의 수많은 과거의 작곡가들이 그렇게 하지 않았나요? 그래서 미요는 다른 작품에서 선율을 빌려오는 것을 완전히 자유롭게 여겼지요. 심지어 그는 18개 내지는 20개의 선율을 마치 '샐러드'를 만드는 것처럼 섞어서 사용하기도 했지요. '네 개의 얼굴' 가운데서 '브뤼셀 사람'에는 벨기에 국가의 선율 가운데 몇 개의 음을 사용했지요. 그렇게 하는 것이(*이 말을 하는 순간에 마들린느는 윙크를 했답니다) 그의 방식이었지요. 그렇지만 아무도 그것을 모른답니.

마틴슨:제르멩이 소나타 1번을 2번 보다 더 좋아하고, 더 자주 연주했는지 알고 있습니까?

마들린느:아니요, 그건 모르겠습니다.

마틴슨:바이올린과 비올라를 위한 소나티네를 얘기해 보죠. 이 작품은 로랑과 제르멩 프레보스트에게 헌정되었습니다. 그것은 일종의 선물이었나보죠?

마들린느:아마도 그랬을 겁니다. 마찬가지이죠, 대부분의 작품들은 오누를 회상하면서 쓴 것들이니까요.

마틴슨:머레이 아자스킨과 짐 볼에게 헌정된 비올라와 첼로를 위한 소나티네에 대해서 아시는 것들이 있나요? 아니면 이 작품이 초연되었을 때를 기억하시는지?

마들린느:네, 어떤 대학에서였어요, 이름이 좀 특이한 대학이었지요. 사스카툰이라고. 아자스킨의 캐나다의 교사였고, 유능한 바이올리니스트였지요. 그리고 그는 산타 바바라에서 미요와 함께 공부했어요. 그래요, 우리는 거기서 만났어요. 저는 미요가 그에게 레슨비를 요구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짐 볼 역시 작곡가였고, 미요의 학생이었지요.

마틴슨:미요가 작곡한 비올라를 위한 두 개의 협주곡에 대해서 좀 알려주시겠어요?

마들린느:첫번째 비올라 협주곡은 힌데미트를 위해 작곡한 것이지요. 그는 암스테르담에서 몽퇴와 함께 그 곡을 연주했어요. 힌데미트는 연주를 마치고 나서 미요에게 좀 더 소규모의 오케스트라와 함께 연주할 수 있도록 곡을 수정해 달라고 했지요. 그러나 힌데미트는 미요가 새로 수정한 협주곡을 다시 연주하지는 않았어요. 물론 그 작품은 미요가 힌데미트에게 헌정했지요.

마틴슨:힌데미트가 '비올라와 대규모 실내 오케스트라를 위한 연주회용 작품'을 당신과 미요에게 헌정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마들린느:맞아요. 우리는 그를 잘 아는 편에 속했죠. 그는 참 특이한 사람이었어요. 아시다시피, 힌데미트는 다른 사람의 작품을 해석하는 데에는 그렇게 유능하지 못했죠, 그러나 자신의 작품을 연주하는데에는 참 능숙했어요. 실제로 암스테르담에서의 리허설을 마치고 몽퇴가 힌데미트에게 얘기했죠. '자 이제 당신의 방으로 가서 공부를 좀 하시게나.' 그랬더니 힌데미트는 실제로 그렇게 했죠!

마틴슨:비올라 협주곡 2번은 윌리엄 프림로즈를 위해서 작곡한 걸로 알고 있는데, 그는 실제로 이 곡을 자주 연주했나요?

마들린느:그렇지는 않았어요. 미요는 비올라 협주곡 2번을 1번보다 어렵게 썼어요. 왜냐하면 프림로즈는 매우 훌륭한 비올리스트였기 때문이었죠. 만일 연주자가 매우 능숙하다면 작곡가는 그에게 맞추어 작곡을 할 거에요. 그래서 미요는 어렵게 작품을 썼지요. 만일 당신이 비르투오조라면 그것들을 연주할 수 있을 거에요.

마틴슨:그렇다면 프림로즈가 미요에게 협주곡을 위촉했나요?

마들린느:네, 그랬지요. 우리는 프림로즈가 아스펜에서 가르치고 있을 때에 만났어요. 우리는 20대였고, 제 생각에 그는 1950년부터 1970년까지 작곡을 했던 것 같아요.

마틴슨:당신은 미요와 프림로즈와의 관계를 어떻게 생각하나요? 그들은 친구였나요? 아니면 그저 동료였나요?

마들린느:그들은 분명 가까운 사이였어요. 그러나 그 밖에 별다른 것은 없었던 것 같아요. 아마도 미요가 작곡가였기 때문에 가능했던 사이 같아요. 미요는 정말 성실했어요. 진지한 척 하지 않았고, 자신이 하는 일에는 기준을 낮추는 법 없이 장인처럼 성실하게 임했으니까요.

마틴슨:미요가 비올라 작품들을 작곡할 때에 비올라를 옆에 두고 작곡했나요?

마들린느:그렇지는 않았어요. 미요는 매우 빠른 속도로 작곡을 했어요. 물론 그 전에 몇 주, 혹은 몇 년 동안 충분히 구상을 하고, 그 구상이 익으면 그는 단숨에 써 내려갈 수가 있었어요. 그는 매우 비상한 기교를 지니고 있었고, 어려움을 피하려고 하지 않았지요. 그는 작곡이 하나의 '게임'이었기 때문에, 작곡을 했던 것도 같아요. 현악 사중주 14번이나 15번을 한번 보세요. 누가 그와 같은 방식으로 작곡을 할 수 있었겠어요? 그는 작품속에 푸가를 많이 사용했지만, 그가 정말로 복잡한 푸가를 좋아했을까요? 사실상, 그것이 그의 삶이었고, 그는 그것을 즐겼지요.

마틴슨:미요가 자신의 비올라 작품들을 연주한 적이 있나요?

마들린느:아니요. 아시다시피 그는 자주 연주하지 않았어요. 그는 1차 대전 이후에는 연주를 완전히 중단했지요. 1917년에 브라질에서 돌아왔을 때에요, 그는 적십자와 같은 사회 봉사단체를 위해 연주를 할 수 있었지요. 그러나 나는 그 이후의 연주회를 취소했지요. 아마도 1920년이었던 것으로 기억해요. 당시 연주했던 곡은 오네거의 두 대의 바이올린을 위한 소나타였지요. 오네거와 미요가 연주를 했답니다. 그러나 두 사람의 연주는 엉망이었지요. 그래서 두 사람 모두 그들의 바이올린을 내려놓기로, 그것도 영원히, 결정했답니다.

(마들린느는 마지막 대답을 하고는 유쾌하게 웃어댔답니다)

다리우스 미요의 비올라 작품 자료집

(*표기 순서는 다음과 같다.

'1.작품번호/2.타이틀/3.편성/4.작곡일시/5.에디션/6.초연/7.헌정자')

1.108/2.협주곡/3.비올라와 오케스트라/4.1929년 프랑스의 엑상프로방스/5.유니버셜/6.콘서르트헤보우 암스테르담, 1929년 12월 15일, 비올라 폴 힌데미트, 지휘 피에르 몽퇴/7.폴 힌데미트

1.226/2.소나티네/3.바이올린과 비올라/4.1941년 5월 6일-8일/5.머큐리 프레세/6.자료없음/7.로랑 알뢰와 제르멩 프레보스트

1.238/2.네 개의 얼굴/3.비올라와 피아노/4.1943년 11월 16일-12월 1일/5.회겔/6.위스콘신 매디슨 대학, 비올라 제르멩 프레보스트, 피아노 그란트 요하넨슨/7.제르멩 프레보스트

1.240/2.비올라 소나타 1번/3.비올라와 피아노/4.1944년 3월/5.회겔/6.위스콘신 매디슨 대학, 비올라 제르멩 프레보스트, 피아노 그란트 요하넨슨/7.제르멩 프레보스트

1.242/2.비올라 소나타 1번의 '에어'/3.비올라와 오케스트라/4.1944년 4월/5.미출판(국회 도서관에 자필보가 보관되어 있음)/6.위스콘신-매디슨 대학 오케스트라, 비올라 제르멩 프레보스트, 1944년 5월 7일/7.제르멩 프레보스트

1.244/2.비올라 소나타 2번/3.비올라와 피아노/4.1944년 6월 27일-7월 2일/5.회겔/6.매디슨 엣지우드 대학/7.제르멩 프레보스트

1.311/2.여름의 콘체르티노/3.비올라와 오케스트라/4.1951년 6월 24일-7월 7일/5.회겔/6.1951년 11월 19일 찰스톤 실내악단, 비올라 로베르트 쿠르트/7.찰스톤 실내악단

1.340/2.협주곡 2번/3.비올라와 오케스트라/4.1954년 12월 2일-1955년 1월 30일/5회겔/6.1958년 11월 27일, 쾰른, 서독일 방송교향악단, 비올라 윌리엄 프림로즈, 지휘 H.로즈보/7.윌리엄 프림로즈

1.378/2.소나티네/3.비올라와 첼로/4.1959년 4월 15일-24일/5.회겔/6.사스카츄반-사스카툰 대학의 섬머 페스티벌, 1959년 6월 9일, 비올라 제랄드 슈타닉, 첼로 페기 샘슨/

1.416/피에르를 위한 엘레지/3.비올라와 타악기/4.파리, 1965년/5.미출판(국회 도서관에 자필본 보관)/6.자료없음/7.피에르 몽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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